경산 도시건축의 생애사(生涯史) <5>… 서상길이 품은 근대건축③
도시에서 건물이 멸실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수명을 다했다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거나, 또는 다양한 도시의 논리에 의해 가치 기준이 바뀌었을 때 건물은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건물의 수명이나 전쟁 또는 재해와 같은 사고에 의한 멸실 원인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도시의 논리에 의한 건물의 멸실은 인간의 욕망, 정치적 권력, 자본의 힘과 같은 복잡한 요인들이 다양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복잡한 도시의 논리들은 도시발전, 환경개선, 경제활성화와 같은 개발 논리로 합리화되기 일쑤이다.

이번 글에선 개발을 앞세운 도시의 논리, 특히 자본의 논리에 의해 생명을 다하게 된 건물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래되었으며, 아무도 살지 않으며, 본연의 용도나 기능이 상실된 건물, 그러나 과거 경산의 근대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 도시문화로서의 가치는 있으나 도시의 논리 앞에서 철거라는 운명을 피할 힘조차 없는 건물, 바로 일본인소학교 교감관사가 그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초등교육기관은 보통학교와 심상소학교로 구분된다.

보통학교는 한국인 학생들을, 심상소학교는 일본인 학생들을 교육하던 곳이다.

에 의하면 1929년 당시 경산군에는 보통학교 5곳, 심상소학교 4곳이 있었다.

오늘 소개할 건물은 당시 경산읍내의 일본인 자제들을 교육하던 경산심상고등소학교의 교감관사이다.

소학교는 해방이후까지 경산읍사무소로 사용되다가 멸실되고, 지금은 그 자리에 모텔들이 들어섰다.

교장관사도 근처에 있었으나 오래전에 멸실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얼마 전 이 건물의 철거 소식을 접했다.

최근 주인이 바뀌어 관사가 철거되고 무인모텔이 들어선다고 한다.

몇 회차 뒤에 이 건물에 대해 다루어 볼 생각이었는데 곧 철거된 다는 소식에 어떻게든 좀 더 많은 기록을 얻고자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눈으로 보고, 사진을 찍고, 실측을 하고, 기록을 남기고, 그 건물이 가진 모든 기억들을 하나둘 나의 기억으로 옮겨 담았다.

현장을 살펴보면서 문득문득 건축주를 설득하여 철거를 막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신축될 건물이 이미 건축허가 단계에 있다고 하니 설득의 단계는 넘어선 셈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제 막 경산의 근대건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는데, 다 찾아내기도 전에 이렇게 하나둘 철거라는 운명을 맞고 있다니 마음이 안타깝고 조급함이 앞선다.

어떻게든 철거를 피하고 보전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본다.

몸으로 막아서 볼까. 공무원을 찾아가 억지를 부려볼까. 다 부질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이미 주변은 새로 신축된 모텔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모텔촌이라는 새로운 장소성을 부여받고 있으며, 건축 관련법은 자본의 힘에 순응하는 기속행위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소학교 교감관사는 현재 서상동 29-2번지(경산도서관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대장의 건립시기는 1927년 사용승인으로 되어 있다.

규모로는 대지 약 620㎡, 건축면적 약 120㎡, 관사 1동, 별채 1동으로 되어 있다.

대문간에 있던 건물 1동은 최근 멸실되었다.

관사의 내부구조는 4개의 방과 거실, 부엌으로 되어 있으며, 좌측 현관으로 들어가면 응접실로 보이는 방이 있고, 중앙에 거실, 우측이 침실로 되어 있다.

거실에 연결된 부엌에는 작은 찬모방이 딸려 있다.

외관의 모습은 단층 우진각지붕에 벽은 흙벽에 회벽마감을 하고 있으며, 응접실과 거실 창은 돌출창으로 되어 있다.

지붕의 기와는 한번쯤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지붕의 모습은 전체 건물너비에 비해 용마루가 좁아 우리의 전통가옥 형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건물 뒤편에는 나중에 지어진 듯한 목욕탕이 딸린 작은 건물이 하나 있으며, 비바람에 풍화된 장독대가 옛 형태를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넓은 마당 한구석에 재래식 화장실이 있으며, 건물의 세월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석류나무와 이름 모를 거목이 건물의 영욕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이 건물은 어떠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까. 과거 관사로 쓰일 당시 몇 명의 주인들이 이곳을 거쳐 갔을까. 관사로서의 용도가 끝나고는 누가 살았을까. 일본인소학교가 사라지고 난 뒤에 이곳이 일본인소학교 교감관사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최근까지 살던 사람은 이 건물의 근대적 가치를 알고는 있었을까. 이러한 생각과 관심도 건물이 눈앞에 있고, 보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건물이 가진 기억은 물론, 우리가 궁금해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지고 만다.

등기부상으로 이 건물은 1976년 민간에게 불하된 것으로 나온다.

이후 4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누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근 집이 비워지기 전까지는 무속인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무속인은 이집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이제 얼마 후면 건물은 철거된다.

그리고 현대적 모텔이 들어서게 된다.

곧 이 장소는 신축건물과 함께 거대한 도시의 욕망을 잉태할 것이다.

그리고 욕망은 새로운 도시이야기로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우리 도시의 장소와 건축은 오래된 것과의 작별이 새로운 재생산을 가져온다는 모순 아닌 모순에 길들여지고 있다.

아마 이 글이 지면에 소개될 즈음이면, 이 건물은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

이정수 (경산도시건축문화포럼/공학박사)